The Bear (Korean)

데릭 파커

1.

나의 가장 먼 기억으로 거슬러 올라가면 내 아버지께서 곰을 집에 데려온 날일 것입니다. 그 때 나는 우리 나이로 아마도 너 댓살 이었을 것이고 내 바로 아래 남동생은 두 세 살 이였을 때이며 막내 여동생은 그 무렵 태어난 갓난 아기였을 것입니다. 아버지가 집에 데리고 들어온 그 곰은 아주 조그마한 새끼 곰이었는데 나는 기아한 낯선 소리로 울어대던 그 새끼 곰이 마치 검은 털 뭉치 공 같았다는 것을 기억합니다.

나의 아버지는 그 당시 강원도 끝에 있는 군사 분계선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지내셨는데 어느 날 군 소대를 이끌며 깊은 산 속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하던 중 그 새끼 곰을 발견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새끼 곰의 어미는 사냥꾼들에 의해 도실되었다고 말했습니다. 이것은 그 당시에는 드문 일이 아니었습니다. 그와 함께 있던 병사들은 그 새끼 곰이 너무 어려서 스스로 살아나갈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하여 현장에서 그 곰을 사살하는 편이 최선의 자비를 베푸는 일일 거라고 말하였으나 나의 아버지는 그 말을 듣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아버지는 그 어린 곰을 숲 속에 남겨 둔다면 다른 곰이나 산 짐숭 들에 의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데에는 생각을 같이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 새끼 곰은 우리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는 말할 필요도 없이 아버지의 그 생각을 좋아하지 않으셨고 곰은 산 짐승이고 흉측한 발톱과 무서운 이빨을 가지고 있으며 더 커지면 분명히 끔찍한 성질을 드러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거기다 우리는 먹을 음식도 근근이 마련할 정도였기 때문입니다.

1960년대 초반의 한국은 수도인 서울을 비롯하여 온 나라가 아주 궁핍했던 시기였습니다. 전쟁의 상흔은 여전히 사람들을 흔들어대며 나락에 빠뜨렸습니다. 나의 아버지는 군인들에게서 존경받는 인물이었습니다. 대령으로서 군부대와 행정부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부대 배치를 자구 새롭게 받으셨기에 우리는 이사를 많이 다녔습니다.  그 때는 소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것이 융숭한 대접을 받는 시기였습니다.

그러나 아버지는 우리가 홀로 남은 곰을 집에서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에 단호했습니다. 그리고 일단 아버지가 결정을 내리면 더 이상 논의할 여지는 없었습니다. 그는 뒤 뜰에 있는 나무판자로 새끼 곰을 위한 작은 오두막-흡사 동굴과도 같은- 집을 만들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 새끼 곰은 따뜻한 달에는 거기에서 살면서 사람들이 남긴 음식을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요.

“남기는 음식은 없어요.”라고 어머니는 말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녀가 그 작은 털 뭉치 공과 시선을 마주쳤을 때 거기에서 킁킁대는 구슬픈 소리를 들으면서 어머니는 우리가 더 이상 그 새끼 곰을 숲 속에 버려둘 수는 없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머니는 머리를 가로저으며 군입이 하나 더 생긴 것에 대해 무슨 말인가를 중얼거리셨고 이렇게 하여 그 새끼 곰은 우리와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어쨌든 나의 어머니는 그 새끼 곰이 먹을 양식을 마련해 주었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때때로 아버지가 집에 안계셨을 때 나는 어머니가 요리를 하시면서 무를 썰어 앉아있는 곰에게 먹여주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내가 그런 모습을 바라보고 있다는 것을 아시고는 입 앞에 검지 손가락을 세워 쉬이! 라고 하시며 아버지께 말하면 안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버지는 그 곰에게 이름을 지어주셨지만 그 이름은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나의 어머니와 남동생, 그리고 이제 겨우 말을 시작한 막내 누이와 나는 그것을 ‘곰’이라고 불렀습니다. 실제로 나는 아기 여동생이 처음 말 문을 뗀 단어가 곰이었다고 알고 있습니다.

2.

나의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이야기를 해야 하겠습니다. 아버지의 고향은, 지금은 북한의 땅이 된 마을이었지만 한국전쟁에서 남한을 위해 싸웠으며 훈장도 받으셨고 승진도 하셨습니다. 아버지의 훈장과 표창장은 사진과 함께 유리 케이스에 넣어져 설날과 같은 중요한 명절 차례에서 우리는 그 앞에 절을 드립니다.

다른 많은 군인들처럼 아버지는 매우 강직하셨고 엄격하셨으며 강인한 정신으로 무장된 분이셨습니다. 그러나 아버지가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씀하실 때기 있었습니다. 그 때마다 아버지는 우리에게 전쟁에 관한 이야기, 한강 전투와 무수한 다른 전투 장면들을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맥아더를 ‘미국의 장군’이라고 불렀지만 또한 다른 한 사람, 그 사람도 장군이었지만 한때 국가의 지도자였으며 대통령의 지위를 가졌던 그 다른 사람에게도 ‘장군’이라는 명칭을 사용했습니다. 아버지는 그 장군을 알고 계셨고 사관학교에서 같이 수학도 했었습니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확신하지는 못해도 그들이 전쟁 중 짊어졌던 어떤 역할에서는 그들이 서로에게 끈끈한 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어쨌든 그들 사이에는 전우의 정이 있었습니다. 나는 전쟁터가 군인들 간에 그런 종류의 인간애를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는 자주 부대 막사에 머물러 계셔야 하는 날이 많았지만 나는 우리의 작은 집에서 아버지와 함께 했던 따뜻한 저녁시간들을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앞마당의 의자에 앉아서 소주를 드시며 이야기를 해주셨고 나와 동생은 마당 풀밭에 앉아서 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아버지는 전쟁 이야기 외에도 그가 자란 작은 마을에 대해서, 쌀과 배추를 심고 비가 너무 적게도 많게도 오지 않도록 그저 알맞게만 내려주도록, 그리고 겨울이 너무 춥지 않도록 기도했던 그런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그 곰도 우리와 함게 앉아서 같이 아버지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나는 어린 여동생이 그 곳에 앉아있던 것을 기억하지만 그녀는 아주 어렸기 때문에 종종 곰에 기대어 잠들어 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나는 아기 여동생이 그 곰의 부드럽고 따뜻한 털을 좋아했다고 생각합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여동생에게 말해주었지만 그녀는 그것을 기억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더 이상 아기가 아니었을 테니까요

3.

그 곰은 흉내 내는 데에는 놀랄 만한 재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요리를 하시거나 청소하는 동안 맑고 감미로운 목소리로 노래를 부르시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그 곰은 곧잘 울부짖는 소리로 따라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또 그 곰은 앉아서 어머니가 화장하는 것을 지켜보는 걸 좋아했다고 추억하셨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그 곰이 화장품 서랍을 열고 자기 얼굴에 시뻘겋게 화장을 한걸 보셨다고 했습니다. 나도 그 때 거기에 있었다고 하셨지만 그것을 기억하진 못합니다.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재미있을까. 립스틱과 파우더를 덕지덕지 마른 곰이라니! 그건 볼만한 광경이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런 일은 있을 수도 있었고 아니었을 수도 있습니다. 어머니와 아버지가 우리에게 얘기해주신 그 곰에 관한 이야기는 전부가 사실은 아니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아마 그것들은 아이들을 위한 이야기였을 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 중 하나는 사실이었을 거라고 생각하고 싶습니다.

  내가 확실히 기억하는 한 가지는 어머니가 딸기와 버섯을 따려고 나와 내 동생들을 데리고 숲으로 들어갔던 때입니다. 어머니는 그때 내 여동생에게 샌들을 신겼습니다. 물론 그 곰도 우리와 함께 갔습니다. 그 무렵이 곰이 우리와 1년 남잣 함께 살았을 때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이제는 작은 털뭉치 공처럼 보이진 않았던 그 곰은 우리 뒤를 따라 네 발로 걸어오면서 딸기를 찾아주면 맛있게 먹어댔습니다.

그러던 곰이 어느 지점에서 멈춰 서더니 곧바로 일어서서 냄새를 맡기 시작했습니다. 그게 처음으로 그 곰이 두 발로 똑바로 서 있는 것을 본 때였습니다.

주위를 둘러보고는 어머니와 내 동생, 그리고 샌달을 신은 막내 여동생과 나를 천천이 쳐다보고는 다시 숲으로 시선을 돌렸습니다.

그러더니 다시 네 발로 땅을 짚고 우리에게로 다가왔습니다. 내 손에 코를 비벼대던 그 곰에게 나는 언제나 그랬듯이 귀를 긁어 주었습니다.

언젠간 떠날거야. 산 짐승이니까.  결국 언젠가는 떠나야겠지 라고 어머니는 나지막이 속삭였습니다.

4.

그 곰은 3년 정도 우리와 함께 지냈던 것 같습니다. 어느 날 그 작은 동굴 오두막에서도, 마당 어느 구석에서도, 그리고 집에서도 자취를 감추어버리기 전까지는.

그 날 저녁 아버지가 부대에서 돌아오셨을 때 어머니께서 나지막하게 곰이 안보인다고 말씀하시던 걸 기억합니다. 아버지는 마무 말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튿날 아침 기지에서 군인을 태운 트럭이 우리 집 앞에 나타났을 때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버지께선 일련의 명령을 내리시고는 짚차에 올라타셨습니다.

나를 바라보시더니 조금 움직여 옆 자리에 공간을 만드시고는 “이리 와, 아들. 가서 친구를 찾아보자”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짚차에 올라탔고 우리는 숲을 향해 출발했습니다. 아버지는 어디로 가야하는지를 알고 계셨고 마침내 우리는 작은 동굴 입구에서 멈춰 섰습니다.

아버지가 짚차에서 내리고 군인들은 트럭에서 내려와 총을 들었습니다. 동굴 안에서는 나지막하게 크르릉거리는 소리가 크게 울렸습니다.

“아빠, 도망간 그 곰을 총으로 쏘진 않을거죠?” 내가 물었습니다.

“아니. 여기가 그 곰을 발견했던 동굴인데 다른 동물이 살고 있을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는 차에 있어야겠다. 그래야 안전하다, 아들.”

아버지는 동굴 쪽으로 걸어가시더니 그 곰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어린 소년이었던 나는 차에 있지 못하고 더 자세히 보고 싶어서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재차 곰을 부르셨습니다.

그 때 그 곰, 우리와 같이 살던 그 곰이 천천히 동굴 밖으로 나왔습니다. 네 발로 아버지께 다가와서는 손에다 대고 코를 비벼댔습니다.

아버지께서 곰의 머리를 쓰다듬자 나지막하게 그르릉 소리를 내었습니다. 아버지는 곰에게 무언가 말을 했지만 나는 그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둘은 그렇게 한참 함께 있었습니다. 마치 길고 긴 시간이 흐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다음 아버지는 돌아서서 짚차로 걸어오셨고 군인들은 트럭으로 돌아왔습니다.

아버지는 짚차에서 나와 있는 나를 보시고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차에 타는 것을 도와주셨습니다. 아버지는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곰은 이미 가버리고 없었습니다.

“너도 집으로 가야하겠지.” 아버지는 혼잣말처럼 되뇌었습니다.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지.”

5.

이튿날 아침 일찍 아버지는 나를 흔들어 깨웠습니다.  “옷 입어라. 엄마와 동생들은 깨우지 말자.”라고 말하셨습니다.

나는 시키는 대로 했고 아버지는 나를 데리고 짚차에 타셨습니다.

우리는 부대로 이어지는 길을 따라 차를 몰았습니다.. 그 길은 전에 가본 적이 없었고 거기가 어딘지 기억도 할 수 없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이 길을 최근에 넓혔다고 말씀하시던 걸 기억했습니다.

우리는 어떤 곳에 차를 멈추었습니다. 콘크리트 도로 위에 작은 헬리콥터가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차에서 내려 헬리콥터 근처에서 지키고 있던 초소 위병과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나는 그들이 하는 말을 들을 수는 없었지만 아버지는 이야기 도중에 한번 자신의 계급장을 가리켰습니다. 그러자 위병은 아버지께 경례를 하고는 헬리콥터 문을 열었습니다.

아버지는 나에게 건너오라는 몸짓을 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로 갔고 우리는 헬리콥터에 올랐습니다.

나는 그때까지 아버지가 펠리콥터를 조종할 수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그 날 아버지는 헬리콥터를 분명히 몰았습니다. 아버지는 엔진에 시동을 걸었습니다. 무선 헤드셋을 머리에 쓰시고는 ‘내 권한으로’라고 몇 번인가 누군가에게 말을 했습니다.

그런 다음 우리는 이륙했습니다.

나는 아버지께 어디로 가느냐고 물었습니다.

“북쪽으로 갈거야. 거기엔 내가 보고 싶은 것이 있고 너에게 보여 주고 싶은 것이 있단다.”

“하지만 복쪽으로 가면 공산당이 우리를 죽이지 않아요?”라고 나는 겁이 나서 물었습니다.“

“휴전선 바로 가까운 곳이란다. 하늘을 날게 될 무렵 우리는 그 곳을 보게 될거고 곧 돌아올거야” 아버지는 담담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북쪽으로 기수를 향했고 헬리콥터 비행장은 우리 뒤로 멀어져 갔으며 길쭉한 띠 모양의 푸른 숲을 지나갔습니다.

“휴전선이다.”아버지가 나지막이 말했습니다.

나는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아마도 그 때는 무언가 무섭고 두려워할 만 했었지만 아버지가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믿음을 갖고 계셨기 때문에 나는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때때로 아버지는 라디오로 누군가와 이야기를 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작은 스피커에서는 다른 사람의 목소리가 -색다른 억양을 가진-흘러나왔습니다. 나는 그게 북으로부터의 소리임을 깨달았습니다.

“나는 단지 내 고향을 보고 싶다.” 아버지는 라디오로 말했습니다. “ 이 헬리콥터는 비무장 상태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고향을 보고 아들에게도 보여주려는 것 뿐이다.”

북의 목소리는 계속 이어졌으며 더욱 귀에 거슬렸습니다. 아버지는 라디오를 껐습니다.

곧이어 우리는 어떤 마을 위에서 원을 그리며 조금 낮게 날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나와 하늘을 올려다보며 서성거렸습니다.

아버지는 작은 집들이 모여있는 곳을 가리켰습니다. “저기가 내가 태어난 곳이다. 그리고 할아버지도 거기서 태어나셨지. 저기 위 채소밭이 보이니? 할머니는 건넛마을에서 태어나셨지. 저쪽 저 집이 보이니? 논 바로 옆 저 집.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전쟁 때 돌아가셨단다. 저기가 우리가 살았던 곳이었어.  전에.”

그 곳은 다른 많은 마을들처럼 점점이 흩어져있는 평범한 농촌의 마을이었습니다. 다른 여느 마을과 흡사했지만 특별한.  나의 아버지가 태어난 그 마을.

“알겠니?” 아버지가 말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 대해 생각했습니다. “네”

그는 고개를 끄덕이시고는 작은 헬리콥터를 남쪽 방향으로 돌렸습니다. 입가에는 미소가 어려 있었습니다.

6.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몇 년이 흘러 어머니는 어버지께 매우 화가 났었다고 나에게 말씀하셨지만 어머니의 어조로 미루어보아 아버지께서 하신 행동과 왜 그랬었는지를 이해햐고 계셨다는 것을 압니다.

아버지는 대령 계급으로 계속 남아계셨지만 어머니께서는 승진이나 훈장, 표창은 없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아버지께서 군에 있으시면서 계급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이 놀랍지 않느냐고 말했습니다. 어머니는 날 보시며 말을 흐리셨습니다. : 장군.

7.

이것이 그 곰의 이야기입니다. 오랜 동안 나는 그 곰을 생각하지 못했지만 그 당시의 내 아버지 나이에 이른 지금에는 자주 생각하게 됩니다.

그 곰이 숲에서 어떻게 먹을 양식을 구했으며 어떤 삶을 살았는지 궁금해집니다. 그리고 언젠가 내가 아버지의 고향을 방문하고 거기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그 논을 다시 볼 수 있을는지 궁금합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떠올려보며 나는 그 마을의 이름을 모른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내게 말씀해준 적이 없으며 나는 한 번도 물어 분 적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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